연기 연구소

배우 프로필 이야기 그 첫번째: 이미지와 콘셉트 본문

배우 이야기

배우 프로필 이야기 그 첫번째: 이미지와 콘셉트

training-actor 2025. 10. 20. 18:25

프로필에는 정답이 없다

필자가 매체 연기 아카데미에서 일할 때는 보통 상담을 시강의 형태로 진행했었다. 덕분에 상담 중에는 여러 가지를 함께 확인, 점검하며 시도해 볼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배우 프로필이었다.

프로필은 배우에게 곧 명함이자 자소서, 이력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프로필 상담은 어찌 보면 취업 시장에서의 자소서 첨삭과도 같은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필자에게 어떤 대단한 자격이 있어 첨삭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대중적 시선과 배우로서 배우를 아끼는 마음, 그리고 스텝으로의 경험과, 배우로서 해온 멘땅에 헤딩들이 쌓여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기준을 가지게 된 것일 뿐! 명함이나 자소서에 정답이 없듯, 프로필에 정답은 없다. 그러니 앞으로 이야기할 모든 내용들은 필자의 경험에서 비롯된 지극히 주관적인 하나의 기준일 뿐, 틀림없는 해답이 아니다. 잊지 마시라, 모든 것은 배우 자신의 선택이다.

 

tmi

필자가 프로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분석하게 된 것은 매체 쪽 활동을 하고자 프로필을 돌린 지 1년여쯤이 되었을 때부터였다. 일 년 내내 아무리 프로필을 돌리고 넣어도 오디션 자체가 가뭄에 콩 나듯, 정말 한 50군데 넣으면 한 군데 연락이 올까 말까 하는 수준이었다. 나름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바꿔봤던 것 같은데 콜링의 빈도에는 큰 변화가 없어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기적같이 한 영화 오디션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인물조감독님께서 해주신 한마디로 필자의 프로필은 지각변동을 겪게 된다.

"독백 자체는 재미있는데, 배우님의 이미지에서 코믹한 캐릭터가 바로 그려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혹시 강렬한, 센 역할도 가능하실까요?"

그렇다 필자는 소위 말하는 감초 역할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프로필도 그런 역할을 타겟팅하여 만들었다. 스스로가 하고 싶은 역할만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1년 내내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내 이미지, 비주얼, 목소리, 분위기 그 어디에서도 재미가 연상되지도, 기대되지도 않는다는 걸.

하지만 오디션장을 나오는 마지막까지도 진짜 필자의 은인이신 그 인물조감독님께서는 한번 전문직이나 센 역할 쪽으로 독백이나 프로필을 준비해 보라는 조언을 반복해서 해주셨고, 그 덕에 내 프로필은 완전히 결을 달리해서 재탄생했다. 그리고 이후 시간이 흐르며 필자는 오디션을 백번도 더 떨어진다는 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속적인 서치와 관찰, 분석 등의 과정을 거치며 프로필은 다양한 버전이 생겨났고, 모든 과정은 데이터로 쌓이며 필자에겐 프로필에 대한 기준이 세워졌다. 학생들 프로필도 그런 데이터와 기준을 토대로 보게 되었고, 다행히 함께 확인하고 점검하는 과정에서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점차 프로필 촬영 시즌이면 그룹 상담부터 개별 상담까지 프로필 상담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가 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연이 닿은 사진 스튜디오에서는 배우 전담 컨설턴트로도 나름 인기를 얻기도 했으니 말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도 긍정적인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원하는 이미지 vs 기대되는 이미지

필자가 프로필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계자와 대중이 배우에게 원하는 이미지와 배우 스스로가 원하는 이미지를 얼마나 잘 파악하고 구분할 수 있는가이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배는 산으로 간다. 프로필도 그러하다. 

 

그간 상담을 통해 함께 확인하고 논의했던 학생들 프로필의 경우 대체로 비슷한 양상을 보였는데, 바로 콘셉트 3종 세트로 무장했다는 점이었다.

  • 기본 컨셉(청바지+흰티)
  • 정장
  • 가죽(강렬, 센)이나 섹시 콘셉트
  • 종종 아련(얼빡/눈물/눈빛발사)

*콘셉트가 의상으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나, 쉬운 이해를 위해 본 편에서는 의상과 분위기로 콘셉트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사실 이 콘셉트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으나, 여기서는 메인이 아니기 때문에 말을 아끼도록 하겠다.)

 

대략 이 중 3가지 정도의 콘셉트 사진으로 프로필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체크리스트는 차후에 이어지는 편에서 다루겠지만 일단 이렇게 콘셉트가 혼잡한 경우에는 그래서 배우 본인이 이미지적으로 어떤 무기를 가진 사람인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명함, 자소서, 이력서에서는 일관적으로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사전에 지원 기업의 니즈를 파악하고 나에게 있는 부분 중 그와 맞는 부분들을 반복적으로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어필해야 하는 것이다. 배우도 똑같다. 

 

관계자, 대중이 나라는 배우의 외모 즉 비주얼과 외적인 분위기를 보고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기대하는 캐릭터, 역할을 파악하라. 그리고 그것을 프로필을 통해 여러 콘셉트의 사진을 사용하더라도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명확하게, 지루하지 않게.

 

배우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원하는 캐릭터, 역할이 그와 일맥상통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혹 필자처럼 간극이 크다면 고민과 선택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답은 없다. 그럼에도 필자가 새로운 선택을 했던 이유를 덧붙이자면 시도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필자는 여전히 코미디와 시트콤을 사랑하고, 감초 역할에 대한 마음이 크지만, 현재 필자의 옷 중에는 슬랙스가 가장 많고, 이제 셔츠류와 코트류는 어느 정도 사이즈의 카라가 잘 어울리는지부터 어떤 색감, 재질, 기장, 통 등이 나를 더 지적이게 보이게 하는지, 혹은 세련되게 보이게 하는지 등등 실제로 필자에게 요구되고, 기대되는 이미지와 캐릭터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디테일에 빠삭해졌음이다. 이는 분명 스스로를 더 알아가는 과정이 동반되기도 하다.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여학생이 프로필을 돌려도 오디션 연락조차 오지 않는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키는 160cm 남짓, 하얗고 큰 눈에 귀여운 인상이지만, 눈에는 슬픔이나 아련한 보다는 강인함이 엿보였다.

그녀의 프로필은 기본(흰 반팔+청바지), 센 언니(어두운 배경, 가죽 재킷), 초슬림 섹시(빨간 초밀착 원피스) 콘셉트의 3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본인의 니즈와는 다르게 보였다. 필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노출이 있는 역할이나, 성적 어필이 강한 역할을 원하는가?”

그녀는 당황해했지만,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키 170 이상의 날카로운 인상인 여배우와 본인 중에 누구에게 더 센 역할을 기대할 것 같은가?"

"170 여배우요..."


그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프로필을 구성했는가? 관계자들이 해당 프로필을 보고 어떤 역할로 본인에게 콜링을 할 거라고 기대하는가! 강조하지만 프로필은 당신의 명함이자, 자소서이며, 이력서이다. 할 수 없는 것을 어필하는 것,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어필하는 것은 전략에서 밀리는 선택이다. 

 

물론 누구나 프로필 촬영 자체 혹은 콘셉트에 대한 로망이 있을 수 있다. 배우가 로망을 발현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촬영할 때 하고 싶은 콘셉트를 촬영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 콘셉트를 프로필, 즉 배우의 명함, 자소서로 구성하는 것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필자의 기준에서 프로필은 전략이 필요하다.

적어도 대중의 기대와 본인의 희망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엇갈리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위 상담 학생의 경우, 

- 본인의 비주얼에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 역할, 캐릭터 파악 X 

- 본인이 하고 싶은 역할(세고 강렬한 씬스틸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과 본인의 비주얼적 경쟁력 외면. 

- 오디션 진행 시 하고 싶지 않고, 할 수 없는, 고민을 수없이 할 것 같은 역할의 콘셉트 선택.

- 콘셉트를 표현하는 방식: 배경지와 의상에 국한됨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차차 다뤄보도록 하겠다)

등등의 문제들을 확인하고 함께 더 적합한 방향으로 콘셉트를 잡아보았다.

 

- 작은 키, 당돌함(강한 눈빛), 웃는 모습이 매우 매력 있음 : 캔디형, 귀엽고 발랄한 대학생, 10대 역할 가능(경쟁력) 

- 본인의 니즈 반영 : 캔디형, 왕따를 당해도 굴하지 않는 역할 혹은 왕따 당하는 친구를 위해 나설 수 있는 역할, 천방지축 빨간 머리 앤 같은 역할(예: 이번 생은 처음이라/ 호랑역)

- 시도: 처연함이 가능한가(캔디형도 좋지만 무너짐도 충분히 가능한 이미지), 귀엽고 애교 있는 것이 가능한가, 본인의 첫인상은 강렬보다는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것은 매우 큰 경쟁력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그런 역할을 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할 수 있다면, 절대 할 수 없고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면, 이미지적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시도해 볼 수 있음이다.

 

결과적으로 위 상담 학생은 흰 티 청바지, 맨투맨 청바지, 캐주얼 원피스 (상담 시 입고 온 스타일)로 의상 콘셉트를 잡고, 추가로 일상사진이나 출연영상 캡쳐본으로 10대 학생 역할(교복)과 감정적으로 다운된 연기 사진들을 추가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결과 도출은 필자가 내려준 것이 아니라 학생이 필자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Tip 필자는 이 모든 콘셉트의 사진을 꼭 모두 프로필로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고, 이 중에 가장 본인 얼굴을 잘 보여주는 사진 한 장 혹은 두 콘셉트 정도에서 총 세 장정도만 써도 된다고 했다. 의상도 새로 살 필요 없이 일상에서 본인이 가장 잘 입는, 잘 어울리는 옷을 입되 강렬, 섹시 쪽이 아닌 것으로 선택한다면 사실 무엇이어도 상관없다고 했고, 표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일러주었다.  

배우는 전략가여야 한다

배우는 연기를 잘하면 된다. 그런데 연기를 보여줄 수 없다면, 선택받을 수 없다. 작품에 투입되려면, 오디션을 봐야 하고, 오디션을 보려면 일단은 프로필이 선택을 받아야 한다. 프로필은 오디션의 문을 여는 첫 관문이기 때문에, 배우 본인의 이미지에서 기대되는 역할과, 작품에서 필요로 하는 배역 이미지를 예측할 수 있다면 적어도 보다 많은 오디션으로부터 콜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자신의 이미지 파악 후 프로필 작업
  • 그에 적합한 독백 선택
  • 작품마다 다른 구성의 프로필을 제출
    단, 욕심내어 구성하지 말라. 본인의 이미지에 알맞은 컨셉 구성이되, 해당 작품에 집중 타겟팅을 하는 것뿐이다.  

지금 우선 우리는 본인에게 어울리는(대중이 나에게 원하는) 이미지를 찾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본인에게 어울린다는 이유로 연기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미지를 욕심내어 드러내거나, 혹 실물과 너무 다른 모습으로 보정을 하는 경우, 오디션 콜링을 받더라도 실질적으로 배우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초목표가 오디션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후에 더 자세히 나눠보도록 하겠다. 

자신의 이미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

대중의 시선으로 보는 나의 이미지를 파악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제 첫인상은 어떤가요?” 라고 물어보자.
  • 지인들에게 “나에게 어떤 역할이 어울릴까?” 혹은 "나를 보면 떠오르는 직업군이 있을까?" 라고 질문해보자.
  • 기성 배우 중 얼굴/체형이 비슷한 사람을 기준 삼아 이미지를 분석 해보자.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유사한 대답이 나온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현재 이미지일 수 있다. 단, 너무 친한 지인들의 경우 본인을 이미지로만 파악하기보다는, 성격적인 부분들을 반영하여 대답해 줄 가능성이 높으니 이 부분을 반드시 감안하길 바란다.(프로필을 보는 관계자들은 우리의 성격을 전혀 알지 못한다.)

또 다른 전략

프로필 촬영에 앞서 콘셉트를 선택할 때, 앞서 이야기한 나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콘셉트 말고 배우 본인의 로망 혹은 그냥 찍어보고 싶은 콘셉트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이 하고 싶은/시도하고 싶은 콘셉트로도 촬영하라. 단, 오프라인용 메인 프로필에 넣을지 여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요즘은 SNS, 카카오톡 프로필, 온라인 프로필 등 활용할 수 있는 채널이 많다. 하고 싶은 혹은 시도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채널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 이 또한 전략이다.

 

현실적으로는, 대중이 ("나"라는 배우에게) 기대하는 이미지에 맞춘 역할을 잘 소화할수록 기회는 더 자주 온다. 기업이 자사 인재상에 맞는 지원자를 선호하는 것처럼, 작품에서도 특정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에게 오디션 콜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기다릴 줄 아는 배우, 전략을 세울 줄 아는 배우가 현장에 더 많이 더 자주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도 발 빠르게 새로운 전략들을 세워간다면, 당장 종이 프로필로는 보여줄 수 없는 우리만의 개성을 보다 빠르고 확실하게 PR 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영과를 졸업하고 다시 학원을 찾는 이유  (0) 2025.10.10